최슬기(31)씨는 사내방송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경력 아나운서다. 처음 시작은 인터넷 방송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했다. 2년이 지나 인천공항 사내 아나운서로 2년, 그리고 KB증권에서 2년을 일했다. 공항에서 이용하는 시민들을 위해 안내방송이나 승객호출, 비상상황 등 각종 이슈에 투입됐다. 증권사에서는 KBS에 출연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사내 아나운서의 삶이란 어떨까. 우먼스플라워는 최 아나운서를 만나 사내방송 아나운서의 삶과 직업, 꿈에 대해 들어봤다. -어릴 때부터 꿈이 아나운서였나. "그렇다. 어려서부터 줄곧 아나운서가 하고 싶었다. 물론 아주 잠깐, 의사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뺑소니 교통사고로 다쳤던 기억 탓이다. 병원에서 깨어난 것만 기억난다. 사고 자체의 기억이 아예 없어서 다행히 차에 대한 트라우마는 없다. 목격자에 따르면 차에 부딪혀 붕 떠올라서 머리부터 추락했다고 했다. 의식이 없었고 머리에 피가 가득 고였다고 했다. 생사가 왔다갔다한 순간이다. 실명의 위기를 겪은 적도 있다. 학교 영어 시간에 카드 게임을 하다가 짝꿍이 카드를 들어올리면서 내 눈에 크게 상처가 났다. 눈에서 물이 줄줄 쏟아져나오는 느낌이었다. 의사
‘당신은 그 자체로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로 아름답다-.’ 드레스룸 업체 ‘유미의 드레스룸’ 창업주 겸 대표인 오유미(24)씨가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유미의 드레스룸은 일상에 지친 여성들이 한 번은 입어봤으면 하는 드레스를 대여해 주는 회사다. 20대 여성을 비롯, 마른 여성, 기혼 여성, 중장년 여성, 성소수자 등 다양한 종류의 여성들이 방문한다고 오씨는 말한다. 지금은 모든 여성에게 ‘아름다움의 경험’을 파는 사람이지만 오씨는 어릴 적만 하더라도 변호사가 꿈이었다고 한다. 돈 없고 힘 없는 사람의 편에 서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하지만 집안 사정은 녹록지 않았다. 오씨는 부친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대학 진학을 미루고 열일곱살 때부터 돈을 벌어야 했다. 컨퍼런스 MC와 모델, 쇼핑몰 등 해본 직업만 10가지가 넘는다. 지금 사업인 유미의 드레스룸도 그렇게 시작한 사업이다. 학점ㆍ취업 등으로 힘든 대학생들에게 드레스를 입어보게 하고 싶었단다. 우먼스플라워는 최근 오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쩌다 드레스룸을 창업했나. "요즘 젊은이들에게 즐거움이 많지 않다. 예쁘고 맛있는 음식 먹고, 사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정도다. 그래서 사진에 착안했다. 또
연세대학교 블록체인 연구회 YBL은 국내 최초의 블록체인 학회다. 학교 내에서 연구모임이라고 하기에는 스케일이 남다르다. YBL은 지금까지 총 1억원 이상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블록체인 산업 발전방안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또한 블록체인 기업인 WITH, YCONS와도 MOU를 체결했다. 학회원인 학생들은 블록체인 분야에서 활발히 창업을 하고 있다. 연세대-포항공대 개방공유캠퍼스 장학시스템 '백팩' 애플리케이션도 베타테스트 중이다. 학교이자 곧 창업 현장인 이곳을 이끄는 사람은 학회장 권예림(22)씨다. 우먼스플라워가 권 회장을 만나 블록체인에 대한 청년들의 노력에 대해 들어봤다. ◇고교 때부터 미래 설계하는 독일식 교육에 영감 받아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일이 우선인 사람이다. 전체를 위해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문자 그대로 나를 스스로 갈아넣는 사람이다. (웃음) 프로젝트를 하고 해당 성과를 인정받을 때 존재감을 느낀다. 블록체인 학회에 들기 전에, 루프트한자에서 세일즈 마케팅 인턴을 한 적이 있었다. 9시부터 6시까지 단 10분도 할 일이 비는 것이 싫어서 없던 일도 만들어가며 일을 했다. 그러다보니
아나운서 박세정(36)씨는SBS CNBC와 한국경제 TV에서 앵커로 일했다. SBS CNBC에서는 외신앵커, 한국경제TV에서는 경제프로그램을 맡았다. 한국외대 영어통번역학부를 졸업한 그는 현업에 있는 지금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그동안 그가 맡아온 국제 컨퍼런스 등 행사는 650건이 넘는다. 굵직한 국제행사에서 실력을 키워왔지만, 그의 삶은 꽤 바쁘고 빡빡한 편이다. 하루에 4~5시간 자면서 일에 매진하는 것은 물론이고, 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있으면 이동만 해도 녹초가 될 정도다. 하지만 일에 대한 재미와 커리어에 대한 욕심, 뉴스 앵커 겸 국제컨퍼런스 MC로서의 사명감 등으로 버텨낸다고 한다. 우먼스플라워는 박씨를 만나 방송과 국제 컨퍼런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당신은 누구인가. "뉴스를 사랑하는 13년차 아나운서 박세정이다. SBS CNBC, 한국경제TV, YTN DMB 등 여러 채널에서 주로 뉴스와 영어뉴스를 진행했다. 동시에 국제 컨퍼런스 영어 MC로서 전문성을 쌓아왔다. 2012년부터는 청와대 포럼을 진행하는 등 정부포럼과 국제 컨퍼런스에서 MC로 일하고 있다." -앵커가 된 이유가 있나. "언론인이었던
이나현(27)씨의 직업은 배우다. 안양예고를 거쳐, 동국대 연극학부와 동국대 영상대학원(공연예술학 석사)을 졸업했다.단편영화, 뮤직비디오, 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커리어를 이어 오고 있다. 어렸을 적 꿈은 발레리나였다. 어릴 적부터 무대에 서면서 연기를 배웠다. 이후 연기에 푹 빠져무대와 카메라앞을 가리지 않고 일한다고 한다. 우먼스플라워는 최근 이씨를 만나 직업으로서 배우와 일상에 대해 들어봤다. ◇무대 위에서 작품에 몰입하며 희열 -어린시절은. "발레리나가 꿈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발레와 현대무용, 한국무용, 재즈댄스 등을 꾸준히 배워왔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무대에설기회도 꽤 많았다. 무대위에서온전히작품에집중하는순간과관객의시선이내게모이는 순간에서 희열을 느꼈다. 연기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도 무대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예술대학에 진학했는데. "고교때부터 춤보다는 연기에 집중을 했다. 어머니의 권유로 안양예고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무대를즐기고남들앞에서표현하는것을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권유하셨다. 안무를통해음악을느끼고그안에서표현하는 춤도 재미있지만, 연기는 작품을분석하는과정과캐릭터를구축해내면서 내가 다양한 모습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매
소위 ‘기성세대’가 보기에 나이 서른 둘은 참 좋은 나이다. 30대 초반에는 열정과 꿈이 있고, 또 못 할 것이 없을 정도의 ‘좋은’ 나이다. 하지만 취업시장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20대 중후반, 이르면 스물 둘셋의 어린 친구들과 신입사원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너무 나이가 많은 것 아니냐”는 질문은 기본이고 기혼에 대한 압박까지 준다. 그 좁은 문을 뚫고 제2의 직업을 향해 자신의 꿈을 펼치는 사람이 있다. 안선랑(32)씨가 그 주인공이다. 기독교TV인 CTS에서 방송진행을 맡았던 한편, 요즘은 각종 행사 진행을 맡아 하고 있다. 중국어 특기를 살려 한중 글로벌 뷰티 수출 교역회 등 한중 교류 관련 행사를 많이 맡았고, 인천 환경의 날 등에서도 활약하기도 했다. 그 외에 수도권의 주요 대형 호텔 오픈도 진행했다. 그는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인천공항에서 일하던 서비스직 직원이었다고 한다.우먼스플라워는 안씨를 만나 취업과 전직 과정, 직업에 대한 꿈 등에 대해 물었다. 이하는 안씨와의 일문일답. -당신은 누구인가. “방송인 겸 행사진행자 안선랑이다. 그동안 CTS 기독교TV와 인터넷 방송 등에서 활동했고, 요즘에는 한중 MC로 일하고
미스 유니버스는 미스월드와 함께 세계 미인대회의 양대산맥으로 불린다. 도널드 트럼프(현 미국 대통령)와 NBC 유니버셜의 공동 주최로 운영하다가, 2015년부터 폭스 방송국으로이전했다. 미스 유니버스의 우승자는 1년간 전 세계를 돌며 사회 공헌 활동을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미스코리아 진 장윤정씨가2위, 2007년 미스코리아 진 이하늬씨가 4위를 한 바 있다. 지난 8월 미스유니버스 국가대표에 당선된 이연주(25)씨는 한국 대표로서는 최장신으로 꼽힌다. 미스유니버스 세계 대회는과거 미스코리아 진에게 출전권이 부여됐으나, 2016년부터는 미스퀸코리아 입상자가 출전하게 됐다. 이씨는 세계 대회 출전을위해 미스퀸코리아에두 번 나섰다고 한다. 이하는 일문일답. ◇가방 디자이너가 꿈, 세계적인 브랜드 창업이 꿈 -모델출신인가. “팬들이 모델과 출신이냐고 묻는데, 동양화를 전공했다. 작년대회에서 처음으로워킹을 배웠다. 동양화 전공자로서, 내 전공이 재밌고 또 좋다. 동양화 전공자로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믿고 있다. 나중에는 동양화 자수를 넣은 백을 디자인 하고 싶다. 트렌디한 가방 디자인에 여성스럽고 동양적인 일러스트
서울대 외국어교육계열을 수석으로 입학하고 경제학과를 복수전공해,우등으로 졸업했다. 곧이어 금융위 산하 공공법인 신용회복위원회에 취직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박재원(29)씨는블록체인 업계에 뛰어들었다. 일하는 곳도 블록체인 회사인데 먹고 잠자는 곳도 '논스'라는 블록체인 코리빙 스페이스다. 그는 블록체인 전문매체에 '디지털자산 시대의 도래'라는 글을 연재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소유권이 변해 온 양상과동시에 블록체인 기술이 현 소유권 체계와 대중의 인식을 어떻게 전환할지에 대해 쓴 글이다. 남들과는 다소 다른 톡톡 튀는 삶을 살고 있는 박씨의 일상과 블록체인에 대한 애정에 대해 물어봤다. 이하는 일문일답. ◇서울대 수석입학, 우등졸업…엄친딸의 반란 -현재 하는 일은. "코드체인 사업개발 팀장으로 일하다가 현재 크로스앵글이라는 스타트업에서 사업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회사의 규모는 작지만 변화의 최전선에서 내가 많은 기여를 할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안정을 추구하던 과거 일하던 공익법인에서는 전통적인 시스템 내에 수직구조안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의 경우에, 블록체인을 통한 자산 토큰화를 통해 기존의 자본과 노동이 분리된 사
방송을 제작하는데 있어 아나운서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당장 TV를 켜면 시간대별 뉴스 프로그램에서 메인 뉴스, 시사교양 프로그램, 예능, 심지어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있다. 연예인이나 유명인, 전문가 패널과는 달리, 언어의 전문가이자 교양과 품격 있는 방송을 만든다는 전문성이 그들의 차별성이다. 최근 들어서는 스포츠와 경제 등의 분야에서 더욱 세분화된 아나운서 직업군이 커졌다. 미국 CNBC, 블룸버그TV와 같이 증권과 경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방송들이 국내에도 활성화되면서 경제방송 아나운서, 증권전문 아나운서의 저변도 확대됐다. 박진영(33)씨도 그 중 하나다. 그는 머니투데이방송(MTN), 팍스경제TV(구 아시아경제TV), 매일경제TV 등에서 주식과 해외 선물, 가상화폐 등을 다루는 방송을 진행해왔다. 지금은 서울경제TV에서 저녁방송을 맡고 있다. 경제방송 아나운서는 다른 직종보다도 더 많은 경제관련 지식과 방송 경력, 시황에 대한 감 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아나운서직 중에서도 특별한 분야로 꼽힌다. 최근 박씨를 만나 경제방송 아나운서의 직업과 삶에 대해 들어봤다. -아나운서가 된 이유는. “세무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대학 때 공인회계사
미스 슈프라내셔널 한국대표와미스코리아 인천 미로 이름을 알린 이은비(27). 화려한 외모로 네티즌들에게 주목받았지만 정작 학창시절부터 노력파였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어린 시절 청소년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것에서 시작, '불후의 명곡' 출연과 가수 민경훈과의 듀엣 가요제 등으로 실력을 키워왔다. 또 TV와 유튜브를 넘나들며 다양한 콘텐츠에 모습을 드러내는 진행자 겸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우먼스플라워가 이은비를 만나 앞으로의 꿈과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딱 한 번 떨었던 오디션..."청심환 먹으니 오히려 더 떨려" -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어릴 때부터 '온 세상이 내 무대'였던 꿈 많은 소녀였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자전거를 타면서 브리트니 스피어스 노래를 부르고, 친구들과 있을 때는 핑클 노래를 불렀다. 심지어 동생에게는 핑클 노래는 내 노래라고 부르지 말라고 까지 했었다고 한다. (웃음) 어머니 말씀으로는교회 유치부에서 영어 찬송가를 내 '필(feel)'에 취해 불렀다고 한다. 어린 아이가 영어를 잘 알았겠나. 고교 진학 이후에는 보컬 학원을 다녔다. 물론 계속 길에서나 집에서나 어디서든 계속 노래를
플로리스트 김세라(34)씨는꽃 사진으로 인기가 많다. 소셜미디어에서 1만명이 넘는 팬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오의 희망곡 등 라디오 방송과 강원MBC의 '강원365' 프로그램에꽃을 통한 인테리어를 주제로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플로리스트였던 것은 아니다. 사회복지사로 사회 첫 발을 디뎠다가 진로를 수정했다고 한다. 최근 우먼스플라워가 김씨를 만나 커리어와 직업관에 대해 물었다. ◇제2의 직업 플로리스트 -플로리스트로 전업한 계기는 "나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사회복지사 출신이다. 그리고 파티스타일링에 관심이 많았다. 모임에서 꽃은 빠질수 없어서 혼자 꽃꽂이를 공부하다가 플로리스트로 직업을 바꿨다. 물론 창업까지 결심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물론 어떤 분야든 창업을 하는데 힘들지 않은 분야는 없을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면서 지인이 없는 춘천에 내려왔기에 더욱이 쉽지 않은 일이였다. 하다가 안풀리면 다시 복지직으로 돌아가야겠단 생각도 했었다." -어떤 노력을 했나. "오픈초기에는 작업 전 미리 색연필로 그려가면서 색감배치를 연습했다. 배우고자 하는것이 있으면 부산이나 지방
장윤주, 송경아, 한혜진과 같은 '제4세대' 모델이 있기전 '3세대'가 있었다. 박영선, 진희경 등과 함께 '막내'김선영이 있었다. 당시 그의 나이 21살,1993년 10월에 데뷔해 2003년까지 눈코 뜰 새 없이 현장을 누볐다. 보그나 엘르, 마리클레르, 여성동아, 우먼센스 등 국내 주요 여성지의 지면에 나온 것은 물론이고, 애경화장품 모델, LG 냉장고, 또 축구선수 안정환과 광고를 촬영하기도 했다.파리컬렉션을 비롯 세계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김선영(47)씨는 지금은 모델 지망생과 미인대회 참가자 등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자로 변신했다. 동시에 연기자에 대한 꿈을 구체화시키고 있다고 한다. 우먼스플라워는 김씨를 만나 최근 근황과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10년간 쉼 없이 정상을 유지했던 원동력은 '쉼' - 모델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하희라, 채시라 등 하이틴 스타들이 뜨던 시절이었다. 큰키에 깡마른 체형, 어깨까지 오는 단발머리, 중학교때부터 별명이 테리우스였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 앞에서 모델 관계자들에게 명함을 많이 받곤 했다. 운동, 예체능에 끼가 많아서 여자팬클럽까지 있었다. 사물함에 선물을 두고 도망가기도 했었다. 집에서모델을 하는
무용과 크로스핏. 어색해 보이지만 또 절묘한 조합 같아 보이기도 한다. 리복 룩북에도 나왔던 이지윤(27)씨. 그의 직업은 무용가 겸 크로스핏 선수다.정답이 없는 ‘날것의 움직임’을 추구하고 싶어 시작한 커리어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언제부터 무용가를 꿈꿨나. "이렇다 할 순간이 있다기보가 자연스럽게, 그냥 어쩌다 보니인듯 하다. 어려서부터 물가에 풀어논 개구리마냥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 인도춤부터 댄스스포츠까지 움직이고 표현하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그러다 초등학교 때 동네에 무용학원이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무용을 시작했다. 무용학원이 열시에 문을 열때 나도 같이 출근했달까. 개설된 수업을 아침부터 밤까지 다 들으며 하루종일 무용만 했다. 똑같은 수업도 할때마다 새롭고 행복했다. 그러다 초6때 첫 대회를 나가게 되었고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 -예고-한예종이라는 ‘정석’ 코스를 거쳤다. 타고난 무용가 같다. "'정석'과는 거리가 멀다. 운이 좋았다. 사실 움직이는 그 자체가 좋았는데 입시를 위해, 상을 받기 위해 연습하는 것에 대해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사춘기 들어서 정체성 혼란을 겪기도 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