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중고 명품 시계 중개였다. 외환위기로 많은 이들이 어려웠던 시절, 대학생이었던 MOI 김한뫼 대표는 당시 압구정 중고 시계 매장에서 명품 시계를 헐값에 사 되파는 것을 봤다. 이 모습을 본 김 대표는 등록금에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중고 시계 매매 커뮤니티를 만들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자개에 옻칠을 한 ‘나전칠기 시계’로 세계 최대 시계 박람회인 스위스 바젤월드에서 많은 호응을 받아왔다. 올해엔 우리나라 전통 그림을 옻칠로 그린 시계로 외국 시계 매니아들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시계 무브먼트 강좌도 함께 열고 있는 그의 목표는 “우리나라 시계 산업이 발전할 토양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 중개로 시작해 수리·제작 독학...MOI 워치 세우기까지 - 시계 업계에 발을 들인 계기가 궁금하다. “1998년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외환위기로 등록금을 내기 버거운 상황이었다. 우연히 압구정 중고 시계 매장에서 낮은 가격에 명품 시계를 사서 되파는 걸 보고, 시계로도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중고 시계 매매 커뮤니티를 만들어 시계 공부를 시작했다. 구매자가 사려는 시계가 진품인지 확인해주기 위해 백화점과 이태원을 오가며 명품 시계 진품과 가품을
미스 유니버스는 미스월드와 함께 세계 미인대회의 양대산맥으로 불린다. 도널드 트럼프(현 미국 대통령)와 NBC 유니버셜의 공동 주최로 운영하다가, 2015년부터 폭스 방송국으로이전했다. 미스 유니버스의 우승자는 1년간 전 세계를 돌며 사회 공헌 활동을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미스코리아 진 장윤정씨가2위, 2007년 미스코리아 진 이하늬씨가 4위를 한 바 있다. 지난 8월 미스유니버스 국가대표에 당선된 이연주(25)씨는 한국 대표로서는 최장신으로 꼽힌다. 미스유니버스 세계 대회는과거 미스코리아 진에게 출전권이 부여됐으나, 2016년부터는 미스퀸코리아 입상자가 출전하게 됐다. 이씨는 세계 대회 출전을위해 미스퀸코리아에두 번 나섰다고 한다. 이하는 일문일답. ◇가방 디자이너가 꿈, 세계적인 브랜드 창업이 꿈 -모델출신인가. “팬들이 모델과 출신이냐고 묻는데, 동양화를 전공했다. 작년대회에서 처음으로워킹을 배웠다. 동양화 전공자로서, 내 전공이 재밌고 또 좋다. 동양화 전공자로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믿고 있다. 나중에는 동양화 자수를 넣은 백을 디자인 하고 싶다. 트렌디한 가방 디자인에 여성스럽고 동양적인 일러스트
“손을 씻고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고 핸드크림을 바른 뒤에 시술 장갑을 꼈어요. 그래도 1~2년 차 때까지 샴푸·약품 ‘독’이 오르더라고요. 손바닥·손등·손목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져 피가 나는 상태로 물에 손을 넣고 드라이어 바람을 쐴 땐 포기하고 싶기도 했죠.” 헤어디자이너 김아라(27) 씨에게 ‘가장 힘들었던 때’를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이었다. 오랜 시간 서 있다 보니 어린 나이에 하지정맥류 수술까지 했지만, 셀카를 찍으면서 활짝 웃는 손님들을 보면 뿌듯해져 모든 걸 잊는다고 한다. “저까지 더 밝고 긍정적으로 변해요. 가족들을 꾸며줄 수 있을 때도 정말 뿌듯하고요”라는 김 씨를 만나 헤어디자이너로 지내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 외모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바꿀 수 있는 일 - 언제부터 헤어디자이너 일을 시작하셨나요? “2011년 9월이요. 고객들을 맞이하는 것부터 시작해 1대1 맞춤 스타일 상담, 시술, 마무리 등을 맡고 있습니다.” - 다른 직업을 꿈꾸신 적은 없으세요?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헤어디자이너와 모델 쪽에 모두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고등학생 때 방과 후에 미용학원과 모델학원을 모두 다녔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일하기엔 미용 기
서울대 외국어교육계열을 수석으로 입학하고 경제학과를 복수전공해,우등으로 졸업했다. 곧이어 금융위 산하 공공법인 신용회복위원회에 취직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박재원(29)씨는블록체인 업계에 뛰어들었다. 일하는 곳도 블록체인 회사인데 먹고 잠자는 곳도 '논스'라는 블록체인 코리빙 스페이스다. 그는 블록체인 전문매체에 '디지털자산 시대의 도래'라는 글을 연재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소유권이 변해 온 양상과동시에 블록체인 기술이 현 소유권 체계와 대중의 인식을 어떻게 전환할지에 대해 쓴 글이다. 남들과는 다소 다른 톡톡 튀는 삶을 살고 있는 박씨의 일상과 블록체인에 대한 애정에 대해 물어봤다. 이하는 일문일답. ◇서울대 수석입학, 우등졸업…엄친딸의 반란 -현재 하는 일은. "코드체인 사업개발 팀장으로 일하다가 현재 크로스앵글이라는 스타트업에서 사업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회사의 규모는 작지만 변화의 최전선에서 내가 많은 기여를 할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안정을 추구하던 과거 일하던 공익법인에서는 전통적인 시스템 내에 수직구조안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의 경우에, 블록체인을 통한 자산 토큰화를 통해 기존의 자본과 노동이 분리된 사
패션 디자이너를 준비 중인 김경현씨(23)가 처음부터 의상디자인을 전공했던 건 아니다. 디자이너의 꿈을 잠시 접고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갔지만, 시간이 갈수록 의상디자인에 대한 꿈이 커져 일단은 재봉틀부터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몇 시간을 서서 재봉을 할 때 그녀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말을 처음 실감했다. 시계를 볼 때마다 시간은 네 시간씩 흘러갔고, 몸은 피곤해도 결과물을 볼 때마다 행복해 힘들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여전히 만족스럽냐는 질문에 “당연하죠”라는 그는 “좋아하는 일은 나중에 포기하더라도 우선 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 처음 배운 재봉틀에 ‘시간 가는 줄 몰라’ - 의상디자인을 전공하기 전에 정치외교학과를 전공했다고 들었다. “고등학생 때 의상디자인을 지원하고 싶었지만, 중학교 때까지만 미술을 배우고 학교 공부에 전념한 상태라 실기 전형이 있는 의상디자인 학과에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때 다른 학과로 입학해 전과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못하고, 무모하게 경쟁률이 높은 비실기 전형으로 의상디자인과만 지원했다가 결국 재수를 했다. 두 번째 입시에선 어떻게든 대학을 가야한다는 생각에 어릴 때 꿈이었던 외교관을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는데 난 덥다. 그리고 몸도 무겁다. 밥 한 끼 먹고 나면 나른하고 또 피곤하다. 아기를 기다린다는 남편의 말이 달콤하게 들릴 때도 있지만, 때로는 너무 졸려서 아무런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 두 문장만 읽어도 알 법한 상황. 그렇다. 김민희(35)씨는 임신부다. 내년 1월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태교에 집중하고 있다. 약간은 늦어 보이는 결혼, 그리고 이어진 임신까지. 더 일하고 싶었지만 ‘노산’ 소리를 듣는 주부로서 부담도 없지는 않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결혼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됐다. 어쩌면 당장 내 이야기일수도 있고, 우리 언니나 동생, 딸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우먼스플라워는 지난 1일 김씨를 만나 전업주부의 일상에 대해 들어봤다. -당신은 누구인가. “서른 다섯 전업주부 김민희다. 경기도 하남시에 산다. 본래는 타 지역에 살았는데 결혼하면서 남편을 따라 근거지를 옮겼다.” -결혼하면서 회사를 그만둔 건가. “그렇다. 결혼 전에는 여러 외국계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했다. 주로 인사나 총무팀에서 업무를 봤다. 하지만 결혼 후 임신 계획이 있어 회사를 그만뒀다.” -좀 더 일하고 싶은 욕심은 없었나. “물론 있었
홍보대행사 ‘길커뮤니케이션즈(길컴)’를 운영하는 백현서(43) 대표는 요즘 제3의 인생을 살고 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백 대표는 졸업 후 게임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8년간의 기자 생활도 잠시, 결혼에 이어 임신과 출산으로 1년 가량 경력단절을 겪었다. 복귀는 다른 직종으로 했다. 기자 생활을 접고 홍보대행사에서 AE로 전업한 것. 이후에는 홍보업계에서 잔뼈를 키우다 올해 들어 창업했다. 최근 백 대표를 만나 취업과 창업, 경력단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회 생활은 어떻게 시작했나. “첫 직장은 게임전문매체에서 시작했다. 10여년 전 게임전문매체에 기자로 취업했다. 당시에는 지금의 한류 열풍에 버금갈 정도로 e-스포츠 분야와 온라인게임이 인기가 좋았다. 이들 분야를 취재했다. 8년 정도 기자를 하다가 결혼과 임신, 출산으로 1년 정도 경력이 단절됐다.” -재취업은 어떻게 했나. “아이가 돌이 되기 전에 홍보대행사를 다니던 친구의 권유로 ‘버네이스&애플트리’라는 홍보대행사에 취업했다. 사실 기자를 하다가 홍보로 전업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소위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뀌는 업무’라는 이유로 주위사람들의 반대도 많았다. 하
미스 슈프라내셔널 한국대표와미스코리아 인천 미로 이름을 알린 이은비(27). 화려한 외모로 네티즌들에게 주목받았지만 정작 학창시절부터 노력파였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어린 시절 청소년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것에서 시작, '불후의 명곡' 출연과 가수 민경훈과의 듀엣 가요제 등으로 실력을 키워왔다. 또 TV와 유튜브를 넘나들며 다양한 콘텐츠에 모습을 드러내는 진행자 겸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우먼스플라워가 이은비를 만나 앞으로의 꿈과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딱 한 번 떨었던 오디션..."청심환 먹으니 오히려 더 떨려" -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어릴 때부터 '온 세상이 내 무대'였던 꿈 많은 소녀였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자전거를 타면서 브리트니 스피어스 노래를 부르고, 친구들과 있을 때는 핑클 노래를 불렀다. 심지어 동생에게는 핑클 노래는 내 노래라고 부르지 말라고 까지 했었다고 한다. (웃음) 어머니 말씀으로는교회 유치부에서 영어 찬송가를 내 '필(feel)'에 취해 불렀다고 한다. 어린 아이가 영어를 잘 알았겠나. 고교 진학 이후에는 보컬 학원을 다녔다. 물론 계속 길에서나 집에서나 어디서든 계속 노래를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김현정(22)씨의 꿈은 호러 작가다. 이벤트 기획과 브랜드 마케팅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 문화콘텐츠를 전공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호러 콘텐츠를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어 틈틈이 시놉시스를 쓴다고 한다. 다양한 장르 중에 굳이 호러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냐고 묻자 “사실 처음엔 자극적이라서 좋아했지만, 언제부턴가 사람들과 연약한 모습을 보여줘도 되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라고 답했다. “가상의 공포 앞에서 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놔도 되잖아요. 이게 좋았어요.” ◇ 스티븐 킹 소설 읽으면서 키운 ‘호러 작가’ - 카페에서 일한다고 들었다. “올해 초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전에도 카페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친구들 만나는 것 포함해서 가장 재밌게 한 일 중 하나다. 성격이 서비스직이랑 잘 어울린다. 상처를 ‘제로(0)’로 받는다. 음료 만드는 것도 꽤 재밌고, 손님들이 맛있게 마셔주면 기분도 좋다.” - 그 정도면 카페를 차릴 생각은 안 해봤나. “카페를 차릴 생각은 안 해봤다. 더 마음이 가는 꿈이 있어서다.” - 꿈이 궁금하다. 전공인 문화콘텐츠와 연관이 있나? “이벤트 기획과 광고·마케팅 분야에 관심이 많다. 누군
장윤주, 송경아, 한혜진과 같은 '제4세대' 모델이 있기전 '3세대'가 있었다. 박영선, 진희경 등과 함께 '막내'김선영이 있었다. 당시 그의 나이 21살,1993년 10월에 데뷔해 2003년까지 눈코 뜰 새 없이 현장을 누볐다. 보그나 엘르, 마리클레르, 여성동아, 우먼센스 등 국내 주요 여성지의 지면에 나온 것은 물론이고, 애경화장품 모델, LG 냉장고, 또 축구선수 안정환과 광고를 촬영하기도 했다.파리컬렉션을 비롯 세계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김선영(47)씨는 지금은 모델 지망생과 미인대회 참가자 등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자로 변신했다. 동시에 연기자에 대한 꿈을 구체화시키고 있다고 한다. 우먼스플라워는 김씨를 만나 최근 근황과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10년간 쉼 없이 정상을 유지했던 원동력은 '쉼' - 모델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하희라, 채시라 등 하이틴 스타들이 뜨던 시절이었다. 큰키에 깡마른 체형, 어깨까지 오는 단발머리, 중학교때부터 별명이 테리우스였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 앞에서 모델 관계자들에게 명함을 많이 받곤 했다. 운동, 예체능에 끼가 많아서 여자팬클럽까지 있었다. 사물함에 선물을 두고 도망가기도 했었다. 집에서모델을 하는
“고등학교 때부터 기자를 꿈꿨어요. 지금도 비틀즈를 좋아하는데, 마지막 앨범의 ‘The end’라는 곡을 특히 좋아했어요. 여섯 줄 뿐인 가사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끄는 걸 보면서, 저도 저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호텔앤레스토랑의 정수진(28)씨의 직업은 기자다.기자를 꿈꾸기 시작한 건 비틀즈 앨범의 마지막 앨범 때문이었다. 월간지 기자로서 마감 기간을 보내는 게 쉽진 않지만, 만족스러운 기사가 활자로 나왔을 땐 어느 때보다 보람이 크다고 한다. ◇ 꿈의 시작, 비틀즈의 마지막 - 하고 있는 업무를 소개해달라. “호텔 전문지 ‘호텔앤레스토랑’에 작년 6월 입사했다. 월간지 기자다보니 월 초에 기획회의를 하고 중순과 말에 취재와 마감을 한다. 주로 호텔업계 이슈를 다룬다, 호텔 경영사 자격증 폐지 같은 제도나 빅데이터·보안 등 기술, 유명인사의 소식 등 다양한 이슈를 다룬다.” - 전엔 어떤 일을 했나? “대학교에서 소비자정보학과와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교지편집부 활동을 했다. 이와 비슷하게 언론 관련 대외활동도 많이 했다. 다양한 텍스트를 접할 줄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졸업한 뒤에 패션잡지에 어시스턴트로 들어갔다.”
올해 등단 10주년을 맞는 김금희(40) 소설가가 예스24 주최 독자들이 뽑은 2019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로 선정됐다. 예스24는 16일 김 작가를 이번 독자 투표의 최종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투표에는 25만3894명의 독자가 참여했다. 김 작가는 24명의 작가가 후보로 오른 이번 투표에서 5만9695표(7%)를 얻었다.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 작가는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 소설부문,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등을 받았다. 지난해 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으로 큰 주목을 받았으며, 단편소설 모음집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를 펴내기도 했다.2위는 5만3119표(6.2%)를 받은 백수린 작가가 차지했으며 이소호 시인이 4만9073표(5.7%)를 기록했다. 이번 수상 결과에 대해 김 작가는 “나는 이제 10년 차 졸업반인 셈이니까 올해 독자들의 선택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에는 세상의 모든 일들이 타인들의 크고 작은 조력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젊은 작가는 세상에 대한 의혹을 거두지 않고 질문을 계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지
그는 소위 '알파걸' 출신이다. 해외에서 오래 살아서 영어도 유창하고, 회의 시간에 해외 사례를 툭툭 던져내는데 어색하지 않다. 국내 톱으로 꼽히는 공공정책 연구기관인 KDI국제정책대학원에서 개발정책 석사도 땄다. 글로벌 NGO 컴패션을거쳐 취업포털 알바천국의 팀장, 이제는 다시 ‘자신의 분야’격인 소셜벤처로 자리를 옮겼다. 더 좋은 세상 만들기를 직업으로 하고 싶어하는 백혜리(37)씨 이야기다. 그는 소셜벤처 볼드피리어드의 팀장을 맡고 있다. 우먼스플라워는 최근 백씨를 만나 삶과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당신은 누구인가. “소셜벤처 볼드피리어드의 마케팅 매니저(팀장)다. 우리 회사는 브랜드 컨설팅이 주된 수익모델이며 수익을 활용해 젋은 아버지를 위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을 발행하는 기업이다. 쉽게 말하면 워라밸을 유지하며 가정을 중심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아버지들을 돕기 위한 잡지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글로벌 NGO와 알바천국에서 근무했는데 이번에는 소셜벤처라니 선뜻 이해가 가지는 않는 커리어다. “다 우연찮은 계기가 있다. 학부 때부터 공익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목표였다. 자연스레 인턴십과 멘토링을 거쳐 NGO 쪽으로 진출했다
놀이터의 뜨거운 햇빛, 목욕탕 냄새, 해지는 베란다. 가끔은 국어사전보다 이런 풍경들이 ‘유년시절’이란 단어를 더 잘 설명한다. 문학을 좋아했던 그녀가 영화에 빠진 것도 교환학생 시절에 했던 ‘진짜 커뮤니케이션은 언어 밖에서 더 많이 이루어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영화사 진진의 마케터 윤혜인(26)씨의 이야기다. 진진은 ‘아메리칸 셰프’, ‘원스’, ‘일일시호일’, ‘안도타다오’ 등의 영화를 우리나라에 들여온 유명 배급사다. “언어를 뛰어넘는 소통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여고괴담2’ 인물들로 위로 받아..영상으로 소통 꿈꿔 - 하고 계신 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달라. “영화사 진진에 2018년 마케터로 입사했다. 예고편·포스터 등의 영화 선재 제작 기획, 카피·보도자료 등 홍보안 작성, 프로모션 진행 등을 맡는다.” - 영화를 좋아한 계기가 있다면? “중학생 때 사춘기를 강하게 겪은 편이다. 그때 혼자 영화를 보는 시간이 많았는데 우연히 <여고괴담2>를 봤다. 그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외로운 아이들에게 공감하면서 위로받았다. 그들의 외로움·고독·방황·두려움이 와닿았다. 말하지 않고 상황을 넌지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무용과 크로스핏. 어색해 보이지만 또 절묘한 조합 같아 보이기도 한다. 리복 룩북에도 나왔던 이지윤(27)씨. 그의 직업은 무용가 겸 크로스핏 선수다.정답이 없는 ‘날것의 움직임’을 추구하고 싶어 시작한 커리어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언제부터 무용가를 꿈꿨나. "이렇다 할 순간이 있다기보가 자연스럽게, 그냥 어쩌다 보니인듯 하다. 어려서부터 물가에 풀어논 개구리마냥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 인도춤부터 댄스스포츠까지 움직이고 표현하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그러다 초등학교 때 동네에 무용학원이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무용을 시작했다. 무용학원이 열시에 문을 열때 나도 같이 출근했달까. 개설된 수업을 아침부터 밤까지 다 들으며 하루종일 무용만 했다. 똑같은 수업도 할때마다 새롭고 행복했다. 그러다 초6때 첫 대회를 나가게 되었고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 -예고-한예종이라는 ‘정석’ 코스를 거쳤다. 타고난 무용가 같다. "'정석'과는 거리가 멀다. 운이 좋았다. 사실 움직이는 그 자체가 좋았는데 입시를 위해, 상을 받기 위해 연습하는 것에 대해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사춘기 들어서 정체성 혼란을 겪기도 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