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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단절도 두렵고, 아이에게도 미안했다. 하지만 일이 너무 하고 싶었다”

[경력단절 직격토크] 백현서 길컴 대표 인터뷰
게임전문지 기자 출신으로, 직업 바꿔 경력단절 극복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


 
홍보대행사 ‘길커뮤니케이션즈(길컴)’를 운영하는 백현서(43) 대표는 요즘 제3의 인생을 살고 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백 대표는 졸업 후 게임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8년간의 기자 생활도 잠시, 결혼에 이어 임신과 출산으로 1년 가량 경력단절을 겪었다. 복귀는 다른 직종으로 했다. 기자 생활을 접고 홍보대행사에서 AE로 전업한 것. 이후에는 홍보업계에서 잔뼈를 키우다 올해 들어 창업했다. 
 
최근 백 대표를 만나 취업과 창업, 경력단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회 생활은 어떻게 시작했나. 
 
“첫 직장은 게임전문매체에서 시작했다. 10여년 전 게임전문매체에 기자로 취업했다. 당시에는 지금의 한류 열풍에 버금갈 정도로 e-스포츠 분야와 온라인게임이 인기가 좋았다. 이들 분야를 취재했다. 8년 정도 기자를 하다가 결혼과 임신, 출산으로 1년 정도 경력이 단절됐다.”
 
-재취업은 어떻게 했나.
 
“아이가 돌이 되기 전에 홍보대행사를 다니던 친구의 권유로 ‘버네이스&애플트리’라는 홍보대행사에 취업했다. 사실 기자를 하다가 홍보로 전업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소위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뀌는 업무’라는 이유로 주위사람들의 반대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일이 너무 하고 싶었다. 경력단절이라는 것도 무서웠다. 나 혼자만 사회에서 도태될 것 같았고, 남편의 월급으로 생활을 한다는 것도 불편했다. 그래서 큰 고민 없이 전업을 시도했다. 이후 피알비즈, 굿윌커뮤니케이션즈 등을 거치며 계속 홍보담당자의 삶을 살아왔다.”
 
- 일하면서 대표 업적이 있다면.

 

“홍보대행사 AE의 삶이 ‘이것이 나의 업적이다’라고 내세울 수 있는 위치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다. 어떤 좋은 결과물을 내더라도 그것은 클라이언트의 결과물이지 우리의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의감도 많이 느꼈다. 
 
하지만 내 스스로 업적을 꼽아본다면, 피알비즈 근무 당시 국내에 스무디라는 음료를 처음 내놓았던 스무디즈코리아가 미국의 본사를 역으로 인수하는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스무디즈코리아가 본사를 인수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오랜 과정을 우리 팀과 함께 했었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역 인수라는 엄청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내 마음 속의 대표 업적으로 꼽는다. 
 
그 외에도 농림축산식품부(당시 농림수산식품부)의 ‘사지 마세요. 입양 하세요’라는 반려동물 입양 캠페인이 있다. 반려동물이 어떻게 버려지는지, 그리고 입양되지 못한 아이들이 안락사 되는 모든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던 기억이 생생하다. 동료들과 발 벗고 나서 반려동물 입양 가정을 찾아줬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 한 명…“어린이집 행사 못 가서 미안”

 

-결혼은 언제 했나.

 

“우리 나이로 서른 살이었던 2005년에 했다. 당시에는 굉장히 나 스스로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어렸다. (웃음)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하나 있다.”
 
-둘째 아이를 낳을 생각은 없었나.
 
“맞벌이 생활을 하느라 둘째 출산은 엄두도 못 냈다. 지금은 좀 후회가 된다. 당시에 좀 힘들었더라도 한 명을 더 낳았어야 했다. 이 인터뷰를 읽는 독자가 있다면, 아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점을 전하고 싶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키는 것이 힘들었을텐데. 

 

“프리랜서로 일하는 남편이 굉장히 많이 도와줬다. 많은 시간을 육아에 할애해 줬다. 저녁에 친구들도 만나고 싶었을 것이고, 일 끝난 후 동료들과 저녁 식사도 하고 싶었을텐데 그런 것들 모두 제쳐두고 아이를 챙겼다. 
 
하지만 남편과 나 모두가 바빠서 둘 다 늦게 귀가하는 일이 허다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9시 넘어서 가는 날도 많았다. 밤 9시쯤 가면 우리 아이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곤 했다. 마음이 찢어진다. 이 때문인지 아이가 늦게 자는 버릇이 있다. 지금도 밤 12시가 다 되어야 잠을 잔다.”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 행사는 가봤나. 
 
“거의 못 갔다. 같은 동네에서 10년 넘게 아이를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를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부모 모임에도 거의 참석을 하지 못했다. 알고 연락하며 지내는 학부모도 별로 없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겠다. 
 
“그렇다. 또 애늙은이라 부를 정도로 의젓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아들은 내 앞에서 ‘엄마가 직장을 다녀서 자기와 함께 하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불만을 표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엄마는 당연히 늦게 들어오고 바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아들이 장난감을 바라보며 ‘기다리면 엄마 와’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스스로를 평가하고자 창업 선택…“워킹맘 마음 놓고 다니는 회사 목표”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한 이유는.
 
“워라밸(일과 가정 양립)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또 나 스스로를 평가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가족들의 반응은. 
 
“남편은 내가 무엇을 하든 항상 응원하는 편이다. 아들은 엄마가 돈을 못 버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약간의 걱정을 하더라.”
 
-향후 계획은.
 
“우선 영업에 주력할 생각이다. 앞서 홍보대행사를 창업했던 친구는 항상 입버릇처럼 ‘끝까지 버틴다’는 정신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하더라. 나도 그렇다. 일단 살아 남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다면 워킹맘들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나처럼 일 때문에 아이를 더 이상 낳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직원이 없는 회사가 목표다.”
 
-끝으로 우먼스플라워 독자들에게 조언한다면. 

 

“나 역시 경력단절의 기간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그 시간이 얼마나 여성들에게 두렵고 스스로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시간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기회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러니 그 시간을 기대하며 항상 준비를 해야 한다.

 

또한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배우 김혜자 선생이 말씀하셨듯, 모든 사람은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를 누릴 자격이 있다. 누군가의 엄마이고, 누이이고, 딸이고 그리고 ‘나’인 이 시간을 자신있게 살았으면 한다.”

 

우먼스플라워 박종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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