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 적절한 속담일지는 모르겠지만, 국제개발협력(ODA)의 상황이 때로는 그렇다. 개발협력은 정치적 또는 외교적 필요와 연관이 있는데다,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도 자신들이 당면한 사회문제보다는 위정자나 정책 결정자의 구미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세계인’이라는 의식에서 다함께 잘 사는 세계를 만들어보려는 사람들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말을 하는 것조차 사치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고민이 진행되는 사이, 어떤 아프리카 저개발국에서는 여성들의 자활 프로젝트가 공무원들의 수당 요구 때문에 지지부진하고, 어떤 나라에서는 자원이 많은 개도국이라며 자신들을 ‘국제사회의 달링’이라고 불러대기 바쁘기도 하다.
서울YWCA 개발도상국 여성 바로알기 모임에서 진행한 2강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 입체적이고 다양한 시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지난 19일 열린 강의에서는 ‘개발도상국 여성 역량강화와 국제협력’이라는 주제로 조혜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국제교류센터장이 연사로 나섰다. 조 센터장은 젠더 프로젝트의 기획 및 평가 전문가 전문가로, 싱가포르국립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지금은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를 겸하고 있다.
양성평등, 사회 전반의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
여성 문제에 관한 ODA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원조수혜국과 그 국가 여성들에 대해 알아두는 것이 기본이다. 조 센터장은 미얀마 여성들에 대한 브리핑부터 시작했다. 서울YWCA는 삼성, 사랑의열매, 나눔과꿈 등과 함께 미얀마 분쟁지역 카렌주에서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양성평등 앙트러프러너십 교육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양성평등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중요성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아직까지 많은 개도국에서는 “왜 양성평등을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일선 공무원들이나 학생들 사이에서 쉽게 나온다. 실제로 한 초등학교에서는 양성평등 교육을 진행한다고 하자 남녀 학생 모두의 학부모들이 항의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양성평등은 세상의 절반인 여성 인구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다. 성불평등은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한편, 여성의 사회 참여를 가로막아 경제 성장도 저해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한국은 노동시장에서 성차별이 줄면 국내 총생산(GDP)의 10%까지 늘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얀마 역시 여성들이 구조적으로 불평등을 당하는 국가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회제도 및 젠더지수(SIGI)에 따르면, 미얀마는 남녀 차별이 높은(high) 국가로 분류됐다. SIGI는 남녀 간의 불평등을 가져오는 사회제도와 법적 규범을 반영하는 사회제도를 측정하는 지표로 가족법, 시민자유, 신체적 안전, 남아선호, 소유권 등으로 측정한다.
물론 미얀마는 최근 정부 개혁과 시민단체, 국제사회 등의 협력으로 여성 인권보호와 성평등 상황이 개선되기는 했다. 미얀마 정부는 2022년까지 ‘여성의 발전을 위한 10개년 국가전략계획’을 수립, 빈곤ㆍ교육ㆍ성 등 12개 중점분야를 선정해 추진하고 있다.
지표상으로는 1인당 국민총소득(GNP)이 여성이 4182달러, 남성이 5740달러다. 평균 학교 교육연수도 여성과 남성 모두 평균 4.9년이다.
15세 이상 경제활동 참여율은 남성이 81.1%이고 여성이 75.1%다. 하지만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여성들이 주로 비공식적 노동시장이나 임금이 낮은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 공무원도 중하위 직급에 치우쳐 있다. 또한 가정 내에서는 가사노동을 도맡아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성평등 원조, 모자보건에 너무 집중”
한국은 대외원조에서 개도국 여성들의 인권향상과 성평등 실현을 주된 방향 중 하나로 삼고 있다. 국제개발협력기본법 3조 1항에서는 ‘국제개발협력은 개발도상국의 빈곤감소, 여성ㆍ아동ㆍ장애인ㆍ청소년의 인권향상, 성평등 실현, 지속가능한 발전 및 인도주의를 실현하고 협력대상국과의 경제협력관계를 증진하며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것을 기본정신으로 한다’면서 여성의 인권향상과 성평등 실현을 국제협력의 주된 원칙임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의 ODA는 성평등이라는 관점에서는 타 선진국에 비해 다소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대외 원조 중 성평등과 여성역량에 관련한 것은 13%(2015~16년 기준)에 그친다.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 평균 40%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된다. 조 센터장은 또 “한국의 성평등 ODA는 모자보건 사업에 너무 집중돼 있다”면서 “정보기술(IT)이나 농업 등 다양한 분야와 연계해 여성분야 ODA 신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개도국 프로젝트에서는 ‘성 주류화’에 실패해 전체 프로젝트의 효과가 반감되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조 센터장은 덧붙였다. 쉽게 말하면 직업이 없는 여성들을 위한 직업 교육을 한다고 했는데, 정작 취약 계층은 정보를 접촉할 방법조차 없고, 오히려 상황이 나은 여성이나 남성들이 주로 수업을 들으러 오는 일이다. 도로 건설을 지원하더라도, 교외의 작은 도로를 개선하면 지역 남녀 주민 모두가 혜택을 볼 수 있는데, 고속도로만 지원하면 트럭운전사나 건설업체 사장 등 남성들이 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의 예다.
우먼스플라워 박종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