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에도 현역으로 왕성하게 현장을 누비는 것은 우리 모두의 꿈이자 목표이다. 100세 시대라 하고 누구나 정년퇴임 이후를 꿈꾸지만, 모두에게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노현숙(62) 공인중개사는 그 기회를 잡은 일부 중 하나다. 2000년대 초 늦깎이로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한 뒤 20년 가까이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오며 자신의 사업장을 가꿔왔다. 우먼스플라워는 노 공인중개사를 만나 삶과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서울 돈암동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노씨가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득한 것은 2003년이다. 주부로 지내오던 중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인중개사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마흔이 넘어서 다시 시작하는 공부는 결코 녹록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민법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민법총칙의 수많은 용어들이 어려웠어. 외울 것이 많은 것은 기본이고, 뭐 그리 권리와 의무관계가 많던지. 꼬박 2년을 고시 준비하듯 공부했지.” 어렵게 공부한 권리관계와 부동산학, 민법 등의 이론과 지식은 현역에서 십여 년째 활동하는 실무에서도 도움이 된다. 지금도 노씨가 부동산 거래를 중개하기 전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권리관계 파악이다. 쉽게 말하면 법원에 소송이 제기됐거나 은행 등에서 압류가 들어온 부동산 물건인지 등 ‘법적 하자’ 여부를 살펴보는 일이다. ◇“공인중개사는 나 혼자서 기다림과 싸우는 것” 공인중개사는 어떤 직업일까. 노씨에게 공인중개사 직업의 핵심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기다림과 싸우는 것”이라고 말이다. 설명을 요청했다. “거래가 활발할 때는 하루에도 수십 통씩 전화가 와. 그런데 어떨 때는 거래가 아예 없을 때가 있지. 2~3일 동안 전화 한 통, 방문 손님 한 명이 없기도 해. 그럴 때는 나 스스로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기다려. 지친다고 문을 닫으면 그 공인중개사 사무소는 손님에게서 버려지거든.” 많은 자영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노 공인중개사는 그동안 자신보다 먼저 사무실을 운영해왔던 선배 공인중개사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다릴까. 팝송을 좋아하는 노 공인중개사는 노래를 들으면서 이겨낸다고 한다. 또한 때때로 마실에 오듯 사무실을 방문하는 동네 주부들과의 네트워크도 노 공인중개사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무형 자산이다. 그의 영업 비결은 ‘진실한 브리핑’이다. “집을 잘 파는 비법은 없어. 솔직하고 진실된 설명이 최고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야 (고객 관계와 평판이) 오래 가지.” 하지만 매사에 의심이 많은 고객들인 경우에는 응대가 쉽지만은 않다는 애로사항도 함께 들려온다. 또한 집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매일 운전을 해야 한다. 본래 운전을 좋아하고 자신이 있어 일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여성인 점 역시 노 공인중개사에게는 일하는데 자산이다. “공인중개사는 여성이 많고, 또 여성이 두각을 나타내는 직업이다. 세심한데다 신뢰를 주기 좋다. 손님을 응대할 때도 여성으로서 강점이 있다. 새댁이나 중년 주부 등 나이대 별로 살아온 길에 대해 공감하면서 이를 풀어나가기도 좋다.“ 공인중개사로서 직업병은 없을까. 그는 “여행을 가도 예쁜 집이 있거나 눈에 띄는 마을이 있으면 유심히 살펴보는 편”이라며 “어디를 놀러 가도 공인중개사 사무소가 주변에 있는지 살펴본다”고 말했다. ◇하루 9시간 반 근무, 피곤해도 퇴근 후에는 운동 노 공인중개사의 일과는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한다. 대개 손님들이 11시쯤부터 방문을 하거나 약속을 잡고 오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은 오후 8시. 하루에 9시간 반을 일하는 셈이다. 일요일 하루 쉰다고 했다. 출근과 동시에 신문 기사를 살펴보고, 인터넷으로 주변 부동산 물건을 확인한다. 이후에는 현장을 둘러보거나 고객이 오면 함께 매물로 나온 집을 방문하고, 또 거래를 체결하는 등의 일을 한다. 손님들은 시도때도 없이 온다. 물론 안 올 때는 아예 발길이 끊어질 때도 있다. 비율로 보면 예약을 하고 오는 사람이 70%, 예고없이 방문하는 ‘워크인(walk-in)’ 손님이 30% 정도다. 대개 발품을 팔기 위해 동네를 돌아보다가 부동산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다. 일하다 보면 집을 구해서 입주한 사람들이 몇 년 지나 동네를 떠나고, 결혼한 새댁이 아이를 키워 자녀 학교 주변 집을 알아본다면서 다시 찾아오는 일이 다반사다. 이럴 때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어렵사리 가격을 맞춰서 집을 산 신혼부부가 몇 년 뒤에 집값도 좀 오르고 자리도 잡았다면서 이사간다고 인사도 오곤 해. 번듯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고맙고 그렇지. 나를 통해 거래한 사람들이 돈 벌고 잘 살았으면 좋겠어. 그 집에서 행복하게들 살고.” 좋은 집과 피해야 할 집에 대해서도 물었다. 좋은 집 고르는 요령을 묻자 “역세권이나 평지, 대형 단지 등 기본적인 것은 물론이고, 남향이고 베란다에 곰팡이가 없는지, 습기가 많은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귀띔했다. 또한 물이 새는 등 하자가 있는지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피해야 할 집에 대해서는 실제 시세보다 융자가 많은 집, 압류가 많은 집 등이 있었다. 얘기가 나온 김에 ‘인터넷 시대에도 발품의 가치는 유효한지’를 물었다. 단번에 “아니다”는 의견이 돌아왔다. 그 이유는 이렇다. “지금은 정보가 공개된 사회잖아. 인터넷 치면 다 나와요. 너무 돌아다니기만할 필요는 없어.” 노씨는 퇴근 후에는 아무리 피곤해도 운동을 한다. 그동안 헬스장 등을 다니면서 다양한 운동을 해왔고, 최근에는 여성 전용 피트니스를 다닌다고 한다. “이 나이 되도록 일하려면 몸을 챙겨야지. 영양제도 꾸준히 먹고 운동은 거르지 않고 있어.” ◇일 하느라 제대로 못 챙겨먹었던 점심 우먼스플라워는 노 공인중개사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노씨의 사무실 인근에 있는 식당이다. 대개 평일이나 주말 할 것 없이 가족 단위 손님이 많은 곳이지만, 정작 노씨는 근처에 사무실이 있으면서 자주 갈 일이 없었다.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사무실에서 간단히 시켜먹기 일쑤였다. 또 노씨는 식사 중 콜라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그 이유는 꾸준한 자기관리에 있다. 나이가 들어서 일하기 때문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이를 위해 꾸준히 운동과 몸관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음식을) 먹는대로 살이 찌는 체질”이라고 겸손하게 답했지만, 탄탄한 체격의 비결은 매일 진행하는 운동과 자기관리에 있었다. 또한 노 공인중개사는 매주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도 하고 있다. 코로나19 시대에 공인중개사 업종은 타격이 적은 축에 속한다.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던 작년에 비하면 부동산 경기가 살아난데다, 소비와 직결된 산업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장에서 지켜보면, 경제는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았는데 시중에는 자금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와 경제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 두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 이에 대해 노 공인중개사는 “기다리고 이겨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노 공인중개사는 언제까지 현역으로 일을 할까. 그는 이렇게 답을 했다. “길어야 5년, 짧으면 3년 더 일을 할까 싶어. 70대 할머니가 되어도 일을 해도 되나 하는 의문도 들고. 물론 지금도 체력은 충분하지.” 우먼스플라워 박종미 기자
‘임원’. 사회 첫 출발을 시작한 신입사원들에게는 가슴 벅차게 다가오는 단어다. 기업의 ‘별’이라 불리기도 한다. 좋은 예우와 대접을 받기도 하지만 ‘임시 직원’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가차없는 성과주의가 적용되기도 한다. 임원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같다는 말도 다들 한다. 여성 임원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아직도 많은 기업에서는 ‘OO업계 최초 여성 임원’ ‘OO계열사 첫 여성 임원’ 등의 기사 헤드라인이 여전하다. 김기화 한국맥도날드 상무는 그 과정을 이겨내고 유명 외국계기업의 임원에 오른 사람이다. 외국계 기업에서 임원이 된 비결은, 그리고 이를 이뤄내기 위한 노력은 무엇이었을까. 김 상무는 “특별한 비결은 없다”면서도 “우리 여성들은 조금 더 욕심을 내야 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터뷰는 서울 종로타워에 있는 한국맥도날드 본사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이하는 김 상무와의 일문일답. Q. 상무님께서는 임원이 된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초년병 시절 일하면서 임원이 될 것이라는 꿈을 갖고 계셨나요. “비결은 따로 없어요. 저는 큰 꿈을 갖기 보다는 하루하루 주어진 문제를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해결하는 성격이에요. 임원이 되겠다는 계획도 없었죠. 하지만 모든 업무에 최선을 다해서 임하다보니 임원이 되는 기회가 온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상사들이 (업무성과를) 잘 챙겨서 알아준 것도 있었고요.” Q. 맥도날드에 입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1년 맥도날드에 입사했어요. 이전까지는 글로벌 주류기업에서 일을 했죠. 일이 바쁘기도 했고, 커리어의 변화를 주자는 생각에 유학을 결심했어요. 아이를 미국에서 공부시킬겸 저도 유학을 가려고 했죠. 그런데 당시 인터뷰 면접관이었던 분이 제게 꼭 입사면접을 참석해 달라고 해서 가봤어요. 그런데 면접을 보면서 좋은 회사라는 생각에 진로를 틀게됐어요. 버거를 파는 회사가 아닌, 버거를 파는 ‘사람들’의 회사. 1만5000명의 한국 고용 직원 중 절반이 여성인 회사.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시하고, 여성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회사.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유학을 포기하고 맥도날드에 경력으로 입사했죠.” Q. 홍보 담당 상무로 일하고 계신데요. 홍보 상무는 어떤 직책이고, 어떤 덕목이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홍보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설득하는 일입니다. 회사의 A에서 Z까지 모두 알아야 할 수 있죠. 또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법부터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모두 알아야 합니다. 이 지식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만드는 것도 홍보의 일이죠. 또 홍보를 할 때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회사의 방향을 알아야 하죠. 최고경영자의 생각부터 회사의 정책 방향 등 다각도에서 만능 엔터테이너처럼 꿰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 설득이 되죠. 센스도 중요합니다. 내 할 말만 한다고 남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시간, 장소, 목적과 같이 메시지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을 갖추고 있어야 홍보인은 설득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것을 꿰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적시적소에 맞는 스토리를 제안할 수 있어야 하니 센스와 다방면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죠. 맥도날드 홍보를 한다고 맥도날드 이야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거든요. (정리하자면)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대해 지식을 꾸준히 쌓고, 센스와 판단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해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이 홍보인의 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Q. 홍보 담당 상무로서 일하면서 여성 리더로서 특징이 도움이 되었나요. “맥도날드에는 여성 임원이 많습니다. 매장 총괄, 마케팅 등 주요 포지션에 여성 임원이 많이 있습니다. 저 역시 여성이고, 협업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격의 없이 수다를 떨 때도 많은데, 때로는 이런 수다가 업무 협업에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공감을 하고, 업무 현안에서 더 나은 방안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죠.” Q. 후배 여성 직원들은 어떤가요. 상무님이 과장이나 차장이었을 때와는 다소 다른 점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젊은 직원들은 당연히 제 세대와는 차이가 있죠. 회사에서 기성 세대와 신세대의 갭을 줄이는 것 역시 중요한 목표 아니겠습니까. 다행히 우리 회사 내에서는 나이 든 사람, 직급이 높은 사람만 목소리를 내는 문화가 아닙니다. 직급이 높은 사람들도 후배 직원에게 어떠한 요청을 할 때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또 서로를 배려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사고방식은 분명히 다르죠. 그 다양성을 중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외식업의 특성상 젊고 트렌드에 민감한 2030세대가 주된 고객층이기 때문에, 젊은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더 중요할 때도 많습니다. 저는 조언이라기보다는 먼저 직장생활을 길게 한 선배로서 제안을 하자면 ‘조금 더 욕심을 갖자’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막연하게 오늘 주어진 업무를 잘 완수할지에 대한 고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상의 치열함 속에 10년 후, 20년 후의 미래를 그려봤으면 합니다. 그리고 욕심을 조금 더 내십시오. 그런다면 우리 여성 직원들도 회사에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리라 생각합니다.” Q. 상무님은 하루 일과 중 시간을 반드시 내서 진행하는 습관이나 행동 같은 것이 있습니까? “하루에 한 번씩은 1시간 이상의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전에는 오전에 운동을 했는데, 저녁 시간으로 바꿨습니다. 저녁에 해야 운동 시간을 더 길게 잡을 수 있다는 남편의 조언을 받아들였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힘들어서 업무에 지장을 줍니다.” Q. 일과 가정의 양립은 오늘날 많은 여성 직장인들에게 고민거리인데요. 상무님도 일과 가정의 양립으로 인한 고민이나 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업무의 특성상 회사 일이 6시에 딱 끝나는 것도 아니고, 업무 미팅도 많았습니다. 육아가 어려웠죠.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덕분에 지금은 대학 3학년으로 잘 커줬습니다. 제가 육아에 있어서 세웠던 원칙은 한 시간을 함께 하더라도 퀄리티 있는 육아, 퀄리티 있는 교감을 하는데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제 아이는 지금은 미국에서 유학 중인데요. 한 번 전화 통화를 하면 지금도 한 시간 반씩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와 교감하고, 대화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많은 가정에서 아이가 훌쩍 자라고 나면 대화가 단절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엄마로서 얼마나 오래 함께 하느냐에 너무 집착하기보다, 대화나 교감의 질에 집중하기를 권합니다.” Q.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었습니다. 한국맥도날드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다행히 영업적인 측면에서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배달이 늘고 드라이브스루에서 실적이 늘어난 결과입니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전년보다) 늘었습니다. 업무을 하는 측면에서는 재택근무가 늘어났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재택근무가 늘어났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출근 하는 일도 있고, 아예 재택근무로 일주일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회의는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하죠. 다행히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아주 잘 한 국가입니다. 전 세계 맥도날드 법인 중에서 전국적으로 문을 닫지 않은 몇 안 되는 나라이기도 하죠. 국가적으로도 그렇지만, 맥도날드의 입장에서도 한국은 코로나 대응을 잘 한 국가로 꼽힙니다.” Q. 코로나19로 인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성 직장인들이 실직 등 위기에 더 취약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안타깝죠.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에 타격이 오면서, 국적을 불문하고 어려운 기업이 많습니다. 하지만 기업은 항상 위기가 (크고 작게) 있었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본인의 사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 약점을 채워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 역시 주류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준비하던 7개월 동안 공부를 부던히 했습니다. 시험도 치고 원서도 쓰느라 마음이 바빴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아쉽습니다. 그 때 조금 더 여유있게 공부를 하고 준비를 더 잘 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실직의 위기를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도 치열하게 준비를 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업무 현장으로 복귀하면 시간이 다시 없습니다.” Q.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는 기업의 인재상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여성 구직자들이 더 갖춰야 할 덕목이나 알아두어야 할 트렌드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코로나19로 인해 인재상의 본질이 바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맥도날드를 중심으로 이야기하자면, 본인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낼 수 있는 인재가 앞으로도 필요합니다. 다만 여성 직원들은 의외로 유연성이 부족합니다. 나 자신의 업무에만 집중하려다, 시야가 좁아지는 경향이 때때로 보입니다. 큰 그림을 보십시오.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항상 체크해 두십시오.” Q. 끝으로 우먼스플라워 독자들을 위한 조언의 메시지를 남겨 주십시오. “국내에서는 여성 임원이라고 하면 독한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모든 여성 임원이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집에 가면 아이의 엄마이고, 아내이자 누군가의 며느리입니다. 밤새 일하는 사람만 임원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 평범한 사람입니다. 누구나 임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우리 여성들도 욕심을 더 내야 한다는 말을 한 번 더 강조하고자 합니다. 옛날에는 본인이 욕심을 내더라도 사회에서 안 받쳐주면 뜻을 이루기 어려웠죠. 지금은 여성 임원에 대해 열려 있는 직장이 많습니다. 물론 그만큼 스스로에게 ‘이만하면 됐다’ 같은 안이한 평가를 내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남편이 일한다고 내가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김기화고, 내가 있는 환경에서 내 목소리를 내왔고, 내게 한계는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노력해 왔습니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내 페이스 대로 하면 기회는 나의 것입니다.” ◇비타민 선물=우먼스플라워는 김기화 상무에게 비타민을 선물했다.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일에 전념하는 여성 임원으로서 건강도 챙기면서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고, 다른 하나는 부하직원들과 신바람 나는 일을 하는 ‘비타민 같은 상사’로 맹활약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전국, 전 세계의 여성 임원들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우먼스플라워 박종미 기자